186㎝ 거구를 가진 수비수의 안색에는 여전히 피곤함이 남아 있었지만 답변할 때마다 천천히 말을 고른 뒤 힘줘 말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올 시즌 프로축구 K리그에서 우승한 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는 국가대표 수비수 김영권(울산 현대)의 인상이 그랬다.
지난 24일 매일경제와 인터뷰한 김영권은 "컨디션은 괜찮지만 아직 피곤해서 몸 상태는 한 70% 정도다. 이제 시즌이 끝났으니 월드컵 때까지 100%로 만들어야 한다. 얼마 전에는 보양식 삼아 장어도 먹었다"며 웃었다.
베테랑 수비수 김영권에게는 카타르가 어느덧 세 번째 월드컵이다. 2014년 브라질, 2018년 러시아에서 모두 조별예선 통과에 실패했던 만큼 김영권은 이번에야말로 16강에 오르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첫 번째 월드컵 때는 긴장도 걱정도 많았고, 두 번째 월드컵은 내 말실수로 좋지 못한 시선 속에서 치르다 보니 더 나빠질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뛰었다"며 "이제 세 번째인데 요즘 유럽에서 뛰고 있는 우리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고 전체적으로 균형도 좋아져 기대된다"고 밝혔다.
요컨대 파울루 벤투 감독이 부임한 이래 4년 동안 팀이 같은 방향으로 꾸준히 움직였기에 믿음이 쌓였다는 것이다. 그는 "벤투 감독님이 특별히 개인적으로 얘기하지 않아도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의 스타일과 축구 철학을 이제 선수들이 자연스레 알게 됐고, 같이 성과를 쌓아왔기에 서로 믿고 함께 갈 수 있는 상태가 됐다"며 "지난 최종예선 이란전 같은 경우가 그렇다. 상대 전적에서 밀리는 팀을 상대로도 좋은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월드컵을 앞두고 김영권 자신의 분위기도 나아졌다. 부상 여파로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당시 "홈 관중 응원 소리 때문에 소통이 어려웠다"는 말실수로 비판받은 뒤 속죄하는 마음으로 치렀던 러시아월드컵 때와 달리 올 시즌 이적한 울산 현대에 17년 만의 리그 우승을 안기며 기분 좋게 월드컵을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영권은 K리그 베스트11 중앙 수비수 부문에 선정되며 공헌도를 인정받기도 했다. 자신의 은사인 홍명보 감독은 물론, 울산의 축구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시도한 이적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김영권은 "나 자신도 그사이에 좋은 경험을 많이 갖췄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러시아 때처럼만 하자고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다"며 "K리그는 물론 아시아에서 뛴 선수들은 시즌을 마친 뒤에 뛰는 겨울 월드컵이기에 경기력을 끌어올리면서 부상도 피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있었는데 다행히 큰 부상자가 안 나왔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자신도 시즌 중반에는 위장염 등 잔부상으로 컨디션이 떨어진 적이 있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회복하고 있다는 말이 뒤따랐다.
이어 김영권은 16강을 위한 가장 중요한 경기는 우루과이전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포르투갈의 베르나르두 실바(맨체스터 시티)가 작은데도 기술력이 워낙 좋아서 주목하고 있지만 경기로 꼽자면 아무래도 첫 번째인 우루과이전을 잘 치러야 다음 경기 흐름까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월드컵이라는 큰 경기에서는 승점 하나도 소중하다. 조별예선 3경기에서 4~5점을 따는 것으로 16강 진출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안정적으로, 확실하게 승점 6점을 따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A매치 95경기에 출전한 그가 출정식인 아이슬란드전, 월드컵 조별예선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 3경기까지 마친 뒤 16강에 진출한다면 영광스러운 센추리클럽(100경기 출전) 가입을 16강전에서 이루게 된다. 월드컵 기간 중에 센추리클럽 가입까지 이룬다면 벤투호의 목표도 자연스럽게 함께 달성되는 셈이다.
"기자분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 날짜를 바꾸는 일이 생기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김영권은 그 이후에 대해서도 내다봤다.
그는 "지금까지 리그 우승, FA컵 우승,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해봤다. 16강 진출까지 이루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본 것일 수도 있지만 마지막으로는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아시아의 호랑이`를 자처하면서도 60년 동안이나 우승하지 못한 아시안컵을 따낸다면 미련 없이 태극마크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바람이었다. 그의 거구 위에, 그 이상으로 무겁게 놓인 책임감이 비로소 보이는 듯했다.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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