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린 백스윙, 게다가 아크도 크지 않고 바로 들어올린다. 이후 다운스윙을 하고 임팩트가 이뤄지기도 전에 시선은 볼을 떠나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박인비(27·KB금융그룹)의 트레이드 마크인 슬로·심플 스윙이다. 최근 투어에서 박인비와 같은 스윙을 하는 선수는 찾아볼 수 없다. 오롯이 박인비 자신의 유연성과 손목 코킹 정도, 심리적 리듬에 딱 맞춘 ‘박인비만의 맞춤 스윙’이기 때문이다.
박인비가 말하는 스윙의 핵심은 클럽 헤드가 지나가는 ‘길’이다. 박인비는 “스윙 이론에 얽매이지 말고 가볍게 백스윙을 하고 클럽 헤드가 지나가는 ‘스윙 패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박인비의 스윙을 본 교습계는 한때 변칙 스윙이라거나 볼을 보지 않아 불안하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2013년 박인비가 메이저대회 3연속 우승을 일구는 등 여제로 등극하자 비판과 우려는 ‘가장 아름다운 스윙’이라는 극찬으로 바뀌었다.
박인비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를 시작해 불과 6개월 만에 홀인원을 하고 두 달 뒤 70타대를 기록할 만큼 ‘감각’을 갖고 있는 선수다.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바로 ‘손목’. 2001년부터 미국 데이비드 레드베터 아카데미에서 레슨을 받던 박인비는 매일 손목이 붓고 혹이 생길 정도로 고통을 호소했다. 병원에서는 박인비의 손목 부위가 짧아 손목을 무리하게 꺾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고민하던 박인비는 2004년 다운스윙과 리듬 위주의 교습을 하는 부치 하먼 아카데미로 옮겨 다시 스윙을 교정했다. 하지만 유연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손목 코킹을 못하는 약점을 갖고 있는 박인비에게는 여전히 맞지 않는 옷이었다.
박인비는 당시를 떠올리며 “스윙의 기본은 많이 배웠지만 지나치게 기계적인 스윙에 얽매이다 보니 자연스러운 리듬과 밸런스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2008년 박인비는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깜짝 스타로 떠올랐지만 고질적인 샷 불안감에 슬럼프에 빠졌다. 2011년 당시만 해도 박인비의 스윙을 보면 왼팔은 곧게 펴져 있고 큰 아크를 그리며 백스윙을 했다. 그리고 다운스윙에서 그립 끝을 가파르게 몸 안쪽으로 갖고 들어오며 강력하게 드라이버샷을 날렸다. 하지만 늘 볼이 오른쪽으로 밀렸다. 불안감에 볼을 맞힌 뒤 오른손을 덮어 왼쪽으로 감아치는 임시방편 스윙을 했다. 심리적 불안감은 성적으로 이어졌고 슬럼프도 계속됐다.
2011년 박인비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유명 교습가도, 톱골퍼도 아닌 평범한 선수 출신의 남편 남기협 씨였다.
남씨는 철저하게 자신이 슬럼프에서 벗어났던 경험 위주로 박인비의 스윙을 교정했다.
박인비는 “지금은 임팩트 전까지 손목을 잘 유지하다 볼을 제대로 쳐준다는 느낌으로 임팩트하고 이후 왼손이 자연스럽게 리드하며 피니시를 한다”고 설명한다. 독특한 스윙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몸이 유연하지 않아서 내게 맞는 스윙을 찾게 됐고 지금의 스윙이 만들어졌다”고 말한 뒤 “임팩트 때 머리가 따라가는 것은 폴로스루와 체중이동이 잘 이뤄지게 하기 위해 만든 동작”이라고 설명했다. 볼이 앞으로 똑바로 날아가기 시작하자 박인비의 ‘타고난 감각’과 시너지 효과를 내며 세계랭킹 1위 자리에 올랐다.
박인비는 “몸이 자연스러운 자신만의 느낌을 찾고 자신 있게 스윙하라”고 조언한다.
[조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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