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9년차 정재은(26)은 올 시즌 KLPGA투어 상금랭킹 33위에 올라 있다. 6개 대회를 뛰면서 상금 6081만원을 벌었다. 한번도 컷 탈락하지 않았고 10위 이내에도 세 번이나 들었다. 일본 여자골프 시드권도 갖고 있는 그는 10개 대회에서 상금 2042만엔(1억8671만원)을 획득해 17위에 올라 있다.
한국 1위 전인지(5억5924만원)나 일본 1위 이보미(1억318만엔)에 비하면 초라할지 모르지만 그는 너무 행복하다. `눈물 젖은 빵` 맛을 알기 때문이다.
정재은은 작년 드림투어(2부 투어) 상금왕 출신이다. 상금왕이라고는 하지만 그녀가 작년 벌어들인 상금 총액은 올해 정규투어 33위 상금보다도 못한 5973만원에 불과하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그 이듬해 프로로 전향해 2013년까지 편안하게 정규투어에서 뛰었던 그녀지만 지금은 골프를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 감사하며 산다. 2013년 상금 순위 50위 밖으로 밀리면서 1부 투어 시드를 잃고 선수생활 기로에 섰던 아픈 기억이 있어서다.
비록 고단하지만 도전과 좌절 그리고 희망이 공존하는 드림투어는 그 뜻 그대로 한국여자골퍼들에게 `꿈`을 주는 무대가 되고 있다. 작년 40위 밖 선수들은 1000만원도 채 벌지 못할 정도로 `작은 무대`인 드림투어지만 그곳에서 단련된 선수들은 올 시즌 정규투어 상금순위를 휩쓸며 최고 해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힘든 시절을 겪은 만큼 샷은 더 날카롭고 견고하다. 시련을 딛고 일어난 정신력은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든든한 기반이 되고 있다.
얼마 전 생애 첫 승을 메이저대회인 한국여자오픈 타이틀로 장식한 박성현(22·넵스)도 2013년 드림투어 상금왕 출신이다. 작년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쳤지만 올해는 누구보다 빛난 별이 되고 있다.
사실 그해 드림투어는 치열하다 못해 처절했다. 작년 정규투어 신인왕이었던 백규정과 올해 정규투어 상금순위 6위에 올라 있는 김민선이 각 4위와 5위를 기록해 2부 투어 상금순위 상위 6명에게만 주는 정규투어 시드권을 겨우 차지할 정도였다. 시드권을 얻느냐, 못 얻느냐의 경계에 있던 상금 6위와 7위 금액 차이는 130만원에 불과했다. 올해 정규투어 상금순위 7위를 달리고 있는 배선우도 그해 드림투어에서 11위에 머물러 시드전을 치러야 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다해 먹겠다"며 상금 3위에 올라 있는 고진영은 당시 드림투어에도 제대로 참가하지 못하고 3부 투어인 점프투어에서 뛰면서 후일을 도모하기도 했다.
치열했던 해는 또 있다.
조윤지가 상금왕에 올랐고 이승현(상금2위) 허윤경(4위) 이정민(6위) 이미림(7위) 등 현재 최고 샷을 날리고 있는 톱스타들이 1부 투어 시드권을 놓고 난타전을 펼치던 2009년이다. 당시 6위와 7위 상금은 100만원도 차이 나지 않았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올해 3승을 거두며 상금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전인지도 2012년 드림투어에서 샷을 갈고 닦았다. 상금왕에는 오르지 못하고 2위를 차지하면서 시드권을 손에 쥐었다. 그때 번 상금은 3119만원에 불과했다.
김해림(2011년) 이민영(2010년) 이보미(2008년) 김혜윤(2007년) 안선주(2005년) 등이 드림투어 상금왕을 차지하고 1부 투어로 올라가 스타가 된 선수들이다. 지금 한국여자골퍼는 두 부류로 나뉜다. 김효주나 박결처럼 아마추어 시절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1부 투어로 직행하는 기대주와 2부나 3부 투어에서 시련의 샷을 날린 뒤 정규투어로 올라가는 선수들이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국내 무대에서 성공한 톱 골프스타들이 매년 해외로 빠져 나가지만 꾸준히 새로운 스타들이 나오는 것은 화수분 같은 드림투어가 있기 때문이다.
[오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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