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한국시간) 미국 아칸소주 로저스 피나클CC(파71·6374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 최종일 경기가 열린 16번홀(파4) 페어웨이. 선두로 출발했지만 `디펜딩 챔피언` 스테이시 루이스(미국)에게 1타 차 역전을 당한 최나연(27·SK텔레콤)이 142야드를 남기고 8번 아이언을 꺼내 들었다.
살짝 뒷바람이 부는 상황. 최나연은 핀을 직접 노리고 컨트롤 샷을 날렸다. 포대 그린인 탓에 볼이 정확히 어디 떨어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붙었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린 주변에서 "이글~"이라며 엄청난 함성이 터져나왔다. 최나연의 두 번째 샷이 그대로 홀 속으로 사라진 것. 순식간에 2타를 줄인 최나연은 루이스를 제치고 1타 차 단독 선두로 뛰어올랐다.
`8번 아이언의 기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흥분이 채 가시기 전에 올라선 17번홀(파3) 티박스. 최나연은 이번에도 행운의 8번 아이언을 잡고 풀 스윙을 했다. 홀을 향해 곧장 날아가던 볼은 그린에 떨어진 뒤 굴러 홀 15㎝ 앞에 멈춰섰다. 조금만 더 굴렀다면 `연속 이글`이자 `홀인원`이 될 수도 있었다.
이날 15번홀까지 보기 2개와 버디 1개로 1타를 잃은 최나연은 16·17번홀에서 한꺼번에 3타를 줄여내며 루이스와 미야자토 미카(일본)를 2타 차로 제쳤고, 18번홀에서도 안정적으로 파를 잡아내며 `대역전극`을 마무리했다.
최나연은 경기 직후 "내가 생각해도 기적 같은 플레이였다"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인생 최고의 8번 아이언샷이 두 번 연속 나왔다. 믿기지 않는다. 8번 아이언으로 샷 이글을 한 것은 처음이다. 중학교 때부터 8번 아이언은 가장 믿음이 가는 클럽이었다. 샷 거리도 일정해 믿고 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현지 외신들은 이를 두고 "연이은 완벽한 8번 아이언샷이 최나연을 위기에서 극복하게 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막판 터져나온 최나연의 매직 샷은 루이스를 얼어붙게 했다. 루이스는 "최나연이 16번홀에서 이글을 한 것은 몰랐지만 나를 앞서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2타 뒤진 18번홀에서 승부를 걸려 했지만 미스 샷이 나오며 오히려 보기를 범해 공동 3위로 순위가 더 떨어졌다"고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골프는 장갑을 벗어봐야 안다`는 말을 눈앞에서 증명한 최나연은 올 시즌 박인비(3승), 김세영, 리디아 고(이상 2승)와 함께 다승자 대열에 합류했고 개인 통산 9승 고지에 올라섰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나연은 LPGA 투어 사상 10번째로 `1000만달러 클럽`에도 가입했다. 우승 상금 30만달러(약 3억4000만원)를 획득한 최나연은 LPGA 투어 통산 상금을 1023만6907달러로 늘렸다. 박세리(37·하나금융그룹)와 박인비(27·KB금융그룹)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3번째이자 LPGA투어 전체로는 10번째다.
최나연은 "이 두 번의 샷만큼은 나중에 경기할 때도 항상 기억할 것"이라며 "US여자오픈을 앞두고 경기력도 좋고 우승해 기쁘다. 다음주는 휴식과 연습을 하며 코스가 상당히 긴 US여자오픈에 대비하겠다"고 각오를 말했다.
이날 최나연의 우승 뒤에서 `대박`을 터뜨린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이 대회에서 `데뷔전`을 치른 최나연 캐디 셰인 코머. 코머는 현재 유러피언투어 챌린지투어에 참가하고 있는 프로골퍼다. 사실 최나연은 "지난 화요일에는 골프백 없이 둘이서 코스를 걸으며 많은 것을 알려줘야 했다"고 할 정도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경험 없는 캐디 덕분에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며 자신감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번 우승으로 최나연은 세계 랭킹을 13위까지 끌어올렸다. 최나연의 부활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태극마크 전쟁은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조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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