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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데뷔 10년 만에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우승한 문경준(33)은 한때 공황장애를 심하게 겪었다. 10층 높이조차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고 걸어 다녔고, 심장이 쿵쿵 뛰며 죽을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고 한다. 전에 어쩌다 선두권에 나가기라도 할 때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그가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최종일 선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하다 보니 뒤집기에 성공할 수 있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2위와 점수 차를 넉넉히 벌려 마지막 홀 트리플 보기에도 우승컵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다.
`역전의 여왕`으로 불리는 김세영(22)은 "역전이 가장 쉬웠다"고 말한다. 사실 김세영뿐만이 아니다. 많은 선수들이 1~2타 앞선 스코어를 지키는 것보다는 1~2타 뒤지더라도 뒤에서 쫓아가다 역전시키는 것이 쉽다고 말한다. 최근 골프대회 결과도 이를 증명한다.
올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열린 19개 대회 중 역전극이 벌어진 게 13번이나 된다. 3라운드 선두가 우승까지 지켜낸 사례는 6번에 불과하다. 역전극 확률이 무려 68%나 된다. 선수층이 가장 두껍고 경쟁이 치열한 PGA 무대는 지난 몇 년간 시즌을 돌아봐도 최종일에 뒤집힌 일이 많았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도 역전극이 많아지고 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LPGA 투어에서 역전극 비율은 30% 내외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50%를 살짝 넘었고 올해는 12개 대회 중 7개 대회에서 역전이 이뤄졌다. 역전 확률 58%다.
국내 모든 대회를 역전승으로 일궈냈던 김세영은 퓨어실크 바하마 LPGA클래식에서 역전 우승하더니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는 오히려 브리타니 린시컴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외국 선수가 차지한 두 차례 우승 중 하나인 기아클래식에서 이미림이 선두를 달리다 크리스티 커에게 `뒤집기 패`했다. 작년부터 LPGA 무대에서 역전승이 많아진 이유는 몰아치기에 능한 톱랭커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리디아 고, 박인비, 스테이시 루이스, 김효주 등 `슈퍼급` 선수가 많아지면서 역전극도 많이 펼쳐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또 안니카 소렌스탐이나 로레나 오초아처럼 홀로 독주하는 선수가 없다는 사실도 역전극이 많아진 이유를 잘 설명한다.
국내 대회에서는 남자와 여자대회 무대가 완전히 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남자대회에서는 GS칼텍스 매경오픈과 시즌 개막전인 동부화재 프로미오픈에서 모두 역전극이 펼쳐졌다.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는 문경준이 제이슨 노리스(호주)에 2타 뒤져 있었으나 뒤집었고, 동부화재 프로미오픈에서는 `군인골퍼` 허인회가 3라운드 선두 박효원에게 7타나 뒤처졌다가 대역전극을 일궈냈다. 반대로 6번 경기가 치러진 국내 여자골프 무대에서는 역전극이 한 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국내 여자대회에서 역전극이 많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 3라운드로 치러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체력이 달릴 이유가 없고 역전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올해 톱랭커들이 우르르 미국과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그만큼 경쟁이 덜 치열해진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숨막히는 경쟁으로 선수들은 애간장이 녹을지 모르지만 역전극이 자주 나오면서 골프팬들은 흥미로운 골프 묘미에 푹 빠져들고 있다.
[오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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