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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퍼시픽 팰리세이즈에 있는 리비에라 컨트리클럽(파71·7049야드)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노던트러스트 오픈 최종일 3차 연장전이 펼쳐진 14번 홀(파3·192야드).
폴 케이시(잉글랜드)가 2차 연장전에서 탈락한 가운데 PGA 투어 통산 8승을 거둔 ‘장타자’ 더스틴 존슨(31·미국)과 우승 경험이라고는 3년 전 2부 투어 1승이 전부였던 제임스 한(34·미국)이 티박스에 올라섰다.
먼저 아이언 티샷을 한 존슨의 볼은 핀 3.6m에 멈춰 섰다. 이어 긴장한 듯 친 제임스 한의 티샷은 핀에서 7.5m나 떨어졌다. 운명이 걸린 퍼팅 대결. 한참 동안 캐디와 함께 그린을 살피고 친 제임스 한의 버디퍼팅이 홀 왼쪽으로 흐르다 미끄러지듯 홀 옆을 타고 사라졌다. 제임스 한은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고 순간 존슨 얼굴은 살짝 일그러졌다. 긴장한 탓일까. 이어진 존슨의 짧은 버디퍼팅은 홀 왼쪽으로 그대로 지나갔다.
2년 전 ‘광란의 홀’로 알려진 WM피닉스오픈 16번 홀에서 버디를 잡고 ‘강남 스타일’ 말춤을 춰 화제를 모았던 재미동포 제임스 한이 이제는 당당한 PGA 투어 우승자로 우뚝 섰다.
제임스 한은 한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한국 이름은 한재웅.
아버지가 오클랜드 공항 인근에서 골프연습장을 운영한 영향으로 네 살 때 골프채를 잡은 제임스 한은 금세 가능성을 보였고 아홉 살 때 프로선수로 PGA 투어에서 우승하는 꿈을 키웠다. 주니어 시절 우승만 20차례 했을 정도로 재능도 빼어났다. 공부도 포기할 수 없어 UC버클리에서 미국학과 광고학을 전공하고 2003년 졸업과 동시에 프로로 전향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성적을 내지 못해 투어활동을 할 돈이 없었다. 불과 석 달 만에 골프채를 놓은 제임스 한의 손에는 여자 구두가 들려 있었다. 돈을 모으기 위해 백화점에서 여자 구두를 판매하거나 광고회사나 골프용품 매장에서 일하는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리고 2007년 제임스 한은 그가 태어난 한국에서 재기의 꿈을 다시 키웠다. 물론 낯선 한국 생활이 쉬울 리 없었다. 9개 대회에 참가해 5번 컷통과했고 상금은 818만원밖에 쥐지 못했다. “그래도 한국에서 쌓은 경험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만만치 않은 비용을 들이며 힘겹게 골프를 하는 선수들을 보며 나를 돌아봤다”고 말한 제임스 한은 무대를 캐나다로 옮겼다. 캐나다 투어에서 2년간 2승을 올리며 내공을 쌓은 제임스 한은 PGA 2부 투어인 내셔널와이드 투어(2010~2012년)를 거쳐 32세였던 2013년 꿈에 그리던 PGA 투어를 밟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침내 65번째로 참가한 PGA 투어 대회에서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우승 상금 120만6000달러를 받은 제임스 한은 ‘명인 열전’ 마스터스 출전권도 거머쥐었다. 이와 함께 우승 직후 발표된 세계 남자골프 랭킹에서 지난주 297위에서 무려 211계단이나 끌어올린 86위에 이름을 올렸다.
제임스 한은 “놀랍다. 이렇게 훌륭한 선수들이 많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며 흥분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제임스 한을 더 설레게 하는 일이 있다. 2012년 대학 동문과 만나 결혼한 제임스 한은 3주 뒤에는 예쁜 딸을 얻게 된다.
출산을 앞둔 아내를 위해 WGC 캐딜락 챔피언십 출전도 포기한 제임스 한은 “대회 우승보다 아버지가 된다는 점이 더욱 흥분된다. 오늘 이후 집으로 달려가 아내와 시간을 보낼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합계 4언더파 280타를 친 배상문(29)은 공동 8위로 대회를 마쳤다.
[조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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